창작노트/에세이

오타쿠의 인생 덕질: 인풋을 위해 아웃풋을 하기로 했다.

Mr.Ree 2023. 9. 7. 18:37

사진: Unsplash 의 AbsolutVision

 

 

인풋에의 집착

나는 인풋에 집착했었다.

 

심한 우울증과 번아웃을 겪으면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그 속도 텅 비어버린 느낌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만 보낸 시간들이 길었던 만큼 침대 밖 세상에 대한 지식들이 전부 얕아져 있었다. 이는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나의 발목을 붙잡았고 자존감도 떨어뜨렸다. 그래서 읽히지도 않는 책을 붙잡고 읽어 가면서 어떻게든 내 머릿속에 무엇이든지 다 욱여넣으려고 했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인풋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인풋까지도 이루어졌다.

 

억지로 이루어진 수많은 인풋은 효율적이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결과를 가져오지도 못했다. 수많은 내용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지도 못하고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하나를 겨우 성공적으로 머리에 집어넣어도 너무 느린 인풋 속도에 나는 역시 안 되는 것일까 하는 절망감이 커졌다.

 

좌절을 넘어서 끊임없는 인풋을 한 결과가 아예 아무것도 없는 백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머리 한 구석을 지식으로 채웠다는 뿌듯함은 느껴질 정도의 인풋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인풋은 나의 알 수 없는 갈증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그 갈증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그저 비효율적인 인풋으로 밑 빠진 독을 채우는 중이었다.

 

 

아웃풋에 대한 강연을 듣다.

 

 

하루는 인풋의 일환으로 팟캐스트를 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재생한 것이 바로 세바시 강연 '타인을 위한 것이 나를 위한 것이다' 였다. <아웃풋 법칙>의 저자이자 푸릉 대표인 렘군이 타인을 위한 아웃풋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한 내용이다.

아웃풋에 대한 강연자의 설명을 듣자마자 머리를 한대 시원하게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아웃풋 없는 인풋의 저주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인풋에는 끝이 없다. 그 끝이 없는 행위를 무의미하게 반복하고 있으니 어떤 일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풋 지옥에서 내가 느꼈던 갈증이 바로 인풋 된 정보들의 분출이었음을 깨달았다.

예전에 내가 썼던 글과 강연의 내용이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나의 미숙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뜻이기에 나의 미숙함마저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야겠다. 설령 내일의 내가 보기에 오늘의 내가 미숙할 지라도 이런 나의 모습이 또 누군가의 지향점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의 미숙함을 좀 더 뽐내보고 싶어졌다. 그 미숙함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설령 누구도 도움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 미숙함은 이미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었으니까.

아무리 미숙해보이는 나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미숙하지만 있는 장점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로그의 시작

그래서 나는 곧바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항상 해야지 마음만 먹고 게시글 몇 개 쓴 다음에 곧바로 잊어버렸던 블로그에 이번에는 꾸준히 글을 쓰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라서 꾸준하지 못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블로그 게시글 작성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내가 인풋 받은 모든 것, 나의 생활을 나만의 언어로 아웃풋을 하면 된다. 내가 배우고 깨달은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정말로 많은 사람이다. 그 말은 다르게 보면 하나를 깊게 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상 나는 내가 해온 일들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왔다. 부족한 것을 세상에 내놓기에는 부끄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들은 완벽할 필요도 없고 완벽할 수도 없다. 그저 완성하면 된다.

덕질은 정말 즐겁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도 그저 즐거우니까 어떤 것에 대해서 혼자 조사하고 분석하고 창작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도 전문성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즐기면 된다.

그래서 나는 내 블로그에서 내 삶을 덕질하기로 했다.